배뱅이굿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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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뱅이굿 해설

배뱅이굿 공연사진

배뱅이굿은 남도의 판소리와같이
서도소리에 판소리라고도 한다.

남도의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창자가 소리와 아니리와 발림을 엮어 극을 주도해 나가나, 판소리는 남도소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황해도 배뱅이굿은 서도소리와 남도소리, 경기도 소리, 강원도 소리, 등 다양하게 각본되여 있으며, 판소리는 연희자 1인이 완창을 하지만배뱅이굿은 고깔, 무구등 다양한 소품까지 등장하고 장구, 피리, 해금 등 간단한 반주 악대를 수반하기 도한다.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아서 같이 소리를 하는것이 판소리와 다르다고 할 수가 있다.

여러지방에 무가와 민요, 판소리까지 수용하고 있어 소리꾼의 기량에 크게 좌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뱅이굿은 1850년대 중반 평안남도 용강 태생인 김관준 이라는 서도명창이 만들어 부른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작사자가 도산 안창호라는 설도있다. 배뱅이굿은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며, 전편은 "배뱅이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내용이며, 후편은 "배뱅이의 진오귀굿과 극락세계 발원"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안도 배뱅이굿이란?

"평안도 배뱅이굿은 김관준으로부터 주종이 이어져 왔습니다.
김관준은 아들 김종조를 비롯하여 최순경, 김칠성, 김주호, 이인수 등 제자들에게 배뱅이굿을 전수하였고, 이인수는 이은관에게 이를 전했습니다. 이후 이은관 창본은 1961년 김동욱, 이창배, 최상수 등에 의해 정리되었으며, 현재는 이은관 제자인 김경배가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안도 배뱅이굿에서 '배뱅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꿈에서 달비 한 쌍을 치마폭에 받아 넣었다고 전해지며, 전편과 후편 중 주로 후편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집니다.
즉, 배뱅이가 태어나 성장한 뒤 상좌중과의 만남으로 사랑에 병들어 죽고 북망산천으로 가는 내용은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후편인 배뱅이 진오귀 굿에서는 각도의 무당 출연과 박수무당의 임기응변 장면이 강조되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장면이 코믹하게 연희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황해도 배뱅이굿이란?

"황해도 배뱅이굿"의 창자로는 문창규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배뱅이굿을 유일하게 계승한 이는 양소운입니다.
이후 양소운의 수제자인 박일흥이 전수를 받아 2015년 10월 완창 공연을 올렸고, 2018년에는 "황해도 무형유산 제7호 황해도 배뱅이굿"으로 지정되어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배뱅이'라는 이름은 아버지 최정승이 '백의 백갑절'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전편은 옥동자를 얻기 위한 명산대천 기도, 명산대찰 불공, 맹인 덕담경과 퇴경, 무당의 굿 과정 등을 세밀하게 담고 있으며, 특히 산천에서의 기도 소리와 아이를 낳을 때의 소리는 진양조 장단 위에 "육자배기토리"로 구성된 것이 특징입니다.
전편의 마무리는 상좌중이 배뱅이 무덤에서 슬피 우는 장면으로, 이는 평안도 배뱅이굿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후편은 평안도 배뱅이굿과 내용이 유사하지만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평안도에서는 박수무당이 '평양건달'로 등장하는 반면, 황해도에서는 양반 가문의 '조참판'이 '조삥삑'으로 등장하며, 시골 사또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박수무당이 탄로나면서 백성들에게 쫓겨난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한 박수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에서는 구성진 소리와 대사로 연희가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배뱅이의 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수왕길을 가르는 대목'이 등장하며, 무대에서 객석까지 백목필을 길게 늘어뜨리고 '만세받이'를 부르며 수왕길을 가르는 장면이 황해도 배뱅이굿의 큰 특징으로 꼽힙니다. 이처럼 황해도 배뱅이굿은 전편과 후편이 균형감 있게 잘 짜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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