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배뱅이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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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양소운 선생 소개

황해도 전통예술을 이야기할 때 양소운 선생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황해도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예술인이 바로 양소운 선생이다.

(고) 양소운
故) 양소운 선생은 황해도 재령군 출생으로 고조부가 평양감사를 지낸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다. 군양촌(양씨 집성촌)에서 소학교를 다니다 11세에 해주 정례학교로 전학하며 생각지도 않은 예인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어디선가 들리는 장단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그 곳에서 부잣집 할아버지들이 소리 선생을 불러다가 손주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어머니 바느질 품삯으로 겨우 학비를 대던 어려운 형편에 할 수 없이 마을 부자인던 이씨의 수양딸이 되어 장양선 선생을 만나게 된다.
이후 춤의 일인자인 장양선 선생에게 춤을, 부학 최고예술인인 김진명 선생과 양희천 선생에게 서도소리를 문창규 선생에게 배뱅이굿을, 유정철 선생에게 가야금을 사사받는다.

집안에서는 막내딸이 가문 망신을 시킨다며 말리기도 하였지만, 예술과 손 뗄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시들해지고 맥을 못추는 그녀의 모습에 하는 수 없이 예술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출중한 실력으로 14세부터는 권번 조교를 하며 후배들을 가르쳤고 장양선 극단에 들어가 황해도 일대를 순회 공연하기도 했다. 특히 <성인인상무>는 스승이신 장양선 선생이 양소운보고 정각사 스님들의 춤을 보고 오라고 해서 스님들이 추는 나비춤, 바라춤 등을 보고 내려와 장양선 앞에서 춤을 추었고 장양선이 그 춤을 보고 <성인인상무> 안무를 만드셨다.
그 당시 <성인인상무>는 관객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인기를 받았다고 하셨다.
21세에 결혼한 후 활동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게 예술활동을 이어나갔으며, 해방 뒤에는 연백군에서 박동신 선생과 강습소를 차려 검무, 탈춤, 서도12잡가를 가르쳤고, 6.25 사변에 피난을 내려와 대구를 거쳐 인천에 자리를 잡은 뒤 고전 무용 학원을 차려 검무, 탈춤 (봉산·강령·은율), 소리 등을 가르쳤다.

운명처럼 장단 소리에 이끌려 그 소리가 그저 좋아 시작하게 된 11살 소녀의 순수했던 열정을 단 한번의 흐트러짐 없이 지켜나간 故 양소운 선생.

선생의 열정과 업적을 기리며 우리는 故 양소운 선생을 황해도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예술인이라 말한다.


양소운 사진

양소운 사진

양소운 사진

(故) 양소윤 선생 (1924-2008) 주요 약력

1924. 07. 12 황해도 재령 출생

1934~1937 장양선 선생께 봉산·강령탈춤, 성인인상무, 해주검무등 사사받음. 김진명, 양희천 선생께서도소리 사사받음 문창규 선생께 배뱅이굿, 병신재담 사사받음

1961. 10 제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대통령상수상-봉산탈춤)

1967. 06. 16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예능보유자 지정

1967. 10 제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개인상수상)

1970. 07. 22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예능보유자 지정

1983. 03 해주검무보존회 회장 취임

1990. 10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문화부장관상수상-해주검무)

1991. 10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문화부장관상수상-해주검무)

1994. 10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문화체육부장관상수상-해주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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